【후생신보】 전 세계 약 120개국이 시행 중인 ‘설탕부담금’ 가운데, 영국의 사례가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2016년 제도 도입을 예고한 뒤 2018년부터 시행된 영국의 ‘청량음료 산업 부담금(Soft Drinks Industry Levy, SDIL)’은 시행 8년 만에 음료 내 설탕 함량을 절반 가까이 줄이고, 어린이 비만과 충치 등 주요 건강 지표를 개선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영국에서는 기존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던 밀크셰이크 등 가당 유음료(Milk-based drinks)까지 부담금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민간을 중심으로 제기됐으며, 정부는 2028년부터 해당 제품을 과세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설탕부담금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영국 사례는 중요한 정책적 참고 사례로 평가된다.
■ 아동 비만 위기, ‘시장 개입’ 선택한 영국
영국 정부가 설탕부담금 도입에 나선 배경에는 급증하는 아동 비만 문제가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4~5세 아동의 약 10%, 10~11세 아동의 약 20%가 비만 상태였으며, 저소득층 아동의 비만율은 고소득층의 2~3배에 달했다.
영국 국가회계감사원(NAO)에 따르면 비만 관련 질환 치료에 연간 약 51억 파운드(약 10조 원)의 NHS 예산이 투입되고 있었다. 정부는 개인의 선택에만 맡겨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해, 가당 음료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강력한 정책 수단으로 설탕부담금을 도입했다.
특히 가당 음료는 아동과 청소년이 섭취하는 첨가당의 주요 급원으로 지목됐다. 설탕 35g이 포함된 330ml 탄산음료 한 캔만으로도 아동의 하루 권장 설탕 섭취량(약 25g)을 초과한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됐다.
■ ‘계단식 과세’로 기업 행동 변화 유도
영국 설탕부담금의 핵심은 단순 과세가 아닌 ‘성분 재조정(Reformulation)’을 유도하는 정교한 설계에 있다. 정부는 2016년 제도 도입을 예고하면서 2년의 유예 기간을 부여해 기업들이 제품 성분을 조정할 시간을 제공했다.
또한 설탕 함량에 따라 세율을 차등 적용하는 ‘티어(Tier) 시스템’을 도입했다.
100ml당 설탕 5g 이상~8g 미만은 리터당 18펜스, 8g 이상은 리터당 24펜스를 부과했다. 반면 100ml당 5g 미만 제품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같은 구조는 기업들로 하여금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설탕 함량을 낮추도록 하는 강력한 유인을 제공했다. 실제로 과세 대상 음료의 상당수가 비과세 기준을 충족하도록 성분을 변경했다.
■ 설탕은 줄고, 산업은 유지
제도 시행 이후 8년간 SDIL 대상 음료의 평균 설탕 함량은 47% 감소했다. 현재 영국에서 판매되는 청량음료의 89%가 비과세 기준을 충족하고 있으며, 과세 대상이던 음료의 65%는 성분 변경을 통해 기준을 달성했다.
같은 기간 음료 판매량은 13.5% 증가했지만, 전체 설탕 판매량은 39.8% 감소했다. 초기 우려와 달리 청량음료 산업의 매출과 고용에도 부정적 영향은 나타나지 않았다. 옥스퍼드대학교 연구진은 “저당 음료 시장이 성장하며 산업 구조가 건강하게 재편됐다”고 평가했다.
■ 어린이 비만·충치 감소 효과 확인
어린이 건강 지표 개선 효과도 뚜렷했다. 2023년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제도 시행 후 초등학교 6학년 여아의 비만율이 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저소득 지역 아동에서 감소 폭이 더 커 건강 불평등 완화 효과도 확인됐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18세 미만 아동의 충치로 인한 발치 입원 건수가 12%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영국에서 충치는 아동 입원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공중보건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 2028년부터 제도 강화
영국 정부는 2024년 제도 평가를 거쳐 2025년 강화안을 확정하고,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과세 기준을 100ml당 4.5g으로 낮추고, 밀크셰이크 등 가당 유음료를 과세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핵심이다.
■ 한국형 설탕부담금 설계 필요
영국 사례는 설탕부담금이 소비자 부담 증가가 아닌, 기업과 시장의 자발적 변화를 유도하는 건강 정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가격 신호를 활용한 과학적·정교한 당류 저감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청소년 당류 섭취와 소아 비만 문제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형 설탕부담금 도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