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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의 진정한 의사, 故 한원주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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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기자
기사입력 2020/10/20 [16:13]

▲ 故 한원주 선생님

【후생신보】  지난 9월 30일 추석을 하루 앞둔 저녁 한 원주 선생님의 부음을 전달 받았습니다. 94세의 고령에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봉사하는 삶을 사셨던 한원주 선생님을 추모하며 이 시대의 선각자이셨던 선생님의 숭고했던 삶을 기리고자 합니다.

 

한원주 선생님의 삶은 봉사 그 자체였습니다. 한원주 선생님은 1926년 경남 진주에서 6자녀중 3째딸로 태어났습니다.

 

국내에서 산부인과전문의 취득하고 도미하여 내과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귀국하여 개인의원을 잠시 운영하다 봉사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1988년 1월 2일부터 의료선교협회부설 전인치료소인 의료선교의원에서 시작한 봉사는 2008년 7월 31일까지 20년 7개월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주 1회 시간제로 8년간 무료봉사한 것을 합하면, 모두 28년 7개월을 봉사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국내외로 의료봉사를 병행하여 89세까지 해외의료봉사를 하셨으며 이후 요양병원에서 삶의 마지막순간까지 환자들과 동고동락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선생님은 봉사로 전철된 삶을 사셨습니다.

 

한원주 선생님의 봉사정신은 부모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부모님은 조국을 위하는 마음이 남다르신 분들이셨습니다. 항일지사이자 의사였던 아버지는 형무소수감자, 한센병환자, 농촌지역의 어려운 주민을 위해 진료봉사를 하셨으며 조국이 어려울 때나 전쟁 중에는 기꺼이 나라를 위해 병원을 접고 봉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셨습니다. 부모님은 늘 깨어있는 분들로 여자라도 고등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더구나 여성으로서 의사가 된다는 것은 아무나 생각할 수 있는게 아닌 시절이었는데도 당신들의 딸에게 고등교육을 시키고 의사로서 자리잡게 하셨습니다. 이런 부모님들의 생각과 모습을 보고 자란 한원주 선생님이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고 의료봉사에 매진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한원주 선생님은 순수하고 욕심없는 의사였습니다. 2년 전 인간극장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93세의 요양병원 최고령의사로 선생님 출연하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선생님은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인터뷰를 요청받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늘 평상심을 잃지 않고 봉사에 매진하면서 요청에 응하셨고 자신의 유명세가 환자를 위한 봉사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겠다는 자세였습니다. 또한 선생님이 일생동안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성천상을 수상하셨을 때에도 상금 1억 원을 나에게는 돈이 필요 없다 하시며 흔쾌히 소외계층의 환자들을 위해 기부하시는 모습에 성인이 바로 옆에 계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삶은 개인의 영달을 뒤로한 채 오로지 소외계층의 질병을 치유하는데 있었습니다.

 

한원주 선생님은 진정한 내과 의사였습니다. 선생님은 연로해 지시면서 의사로서의 자신을 더욱 단련하셨습니다. 매달 최신 해외 의학저널을 읽고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요약해서 가르쳐 주셨고, 병에 대한 최신 정보도 꿰뚫고 계시는 선생님은 누가 뭐래도 진정한 현역의사이셨습니다.

 

혹여 체력이 떨어져 민폐를 끼칠까하여 계속 근력운동과 손 떨림을 막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기를 쓰기 어려워 손에 부채 하나들고 진료를 해야 하는 무더운 환경속에서도 그 해사한 미소를 잃지 않고, 끝까지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의구심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선생님은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진정으로 우리가 본받고 싶었던 롤모델이셨습니다.

 

한원주 선생님의 봉사정신의 뿌리는 신앙이었습니다. 100년전 이 땅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뿌리내릴 무렵, 외할머니로부터 시작된 기독교의 신앙은 자녀들을 아들, 딸 구별 없이 교육받게 했고, 목사이셨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이 어머님은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아버님의 부모님은 화전민이셨지만, 자식들의 교육에 최선을 다했고, 주일학교라는 이름 때문에 뭐라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9살 나이에 주일학교를 다니게 하셨습니다. 덕분에 선생님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봉사하는 기독교신앙을 어릴 때부터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랑하던 남편을 갑작스럽게 잃은 후 한원주 선생님은 더욱 기독교에 의지하게 되었고 봉사하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신앙의 힘과 봉사하는 삶은 선생님이 일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한원주 선생님은 인간미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인간극장을 보면 선생님은 93세의 연세임에도 회진 전에 립스틱을 바로고 화장을 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선생님은 환자분들과 얼굴을 맞대는 의사로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정결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 몸에 배여 있으셨습니다.

 

의사는 수술과 약으로 환자를 치료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요양병원에 근무하시며 희망을 잃고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삶에 순응하는 모습을 일깨어 주고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그런 의사였습니다. 주의의 후배들에게도 한 번도 큰 목소리로 우리를 이끌고 가려고 하지 않으셨고, 왜 이렇게 밖에 못하냐고 다그치신 적도 없고, 우리에게는 항상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미소만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해외봉사를 가셔서도 한 번도 본인의 짐을 남에게 맡겨본 적이 없으셨습니다. 선생님은 진정으로 환자를 사랑하고 후배들을 배려하는 인간미가 넘치는 의사였습니다.

 

한원주 선생님!

 

언젠가는 우리들 곁을 떠나 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선생님을 떠나 보내고 보니 선생님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집니다. 선생님은 당신의 일생의 삶을 통하여 저희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 어떤 봉사도 내 자랑으로 내세우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미소 지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기쁨으로 봉사하라고”.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가시도록 선생님을 보내드려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저희에게 알려주신 봉사의 의미를 가슴에 잘 새겨 앞으로 저희들의 삶에서 선생님의 모습이 저희들에게 나타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많은 환자분들과 후배들이 선생님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대한기독여자의사회 회장 조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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