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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배롱나무

영원한 푸른소나무, 백일 붉은꽃 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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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신보
기사입력 2020/06/15 [10:04]

▲ 이정균 원장(이정균내과의원)  © 후생신보

나무의 제왕 소나무, 지조와 영원의 상징기이고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나무 사랑은 특별하다. 마치 종교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부터 우리 시문에 가장 많이 등장한 나무는 단연 소나무다. 신라 황룡사 벽에 <노송도>를 그렸다는 솔거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소나무 또한 일찍부터 그림의 중요한 소재이기도 했다.

 

소나무는 동아시아 고대 사회의 중요한 목재여서 중시되었으며 그 늠름한 자태와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품성은 지절의 상징이 되었다.

 

“선비 꽃과 나무를 벗하다” <양화소록>에서는 “격물론”을 인용하여 소나무를 설명하기를 “소나무 가운데 큰 것은 둘레가 몇 아름이고, 높이는 십여 길이다. 울퉁불퉁한 마디가 많고, 껍질은 몹시 거칠고 두꺼워서 용 비늘과 같다. 서린 뿌리와 굽은 가지로 사철 동안 푸름이 변하지 않는다. 가지와 잎은 봄 이삼월에 싹이 나오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 바늘잎이 셋인 것은 고자송(枯子松?일반소나무)이고, 바늘잎이 다섯인 것은 산송자송(山松子松?五葉松?잣나무)이다. 그 송진은 맛이 쓴데, 땅 속에 들어가서 천년이 지나면 복령(茯笭)이 되고, 또 천년이 지나면 호박(琥珀)이 된다.”

 

우리 소나무는 비늘잎이 두 장이다. 리기다소나무는 세 장 잣나무는 다섯 장이다. 잎이 달린 한 마디가 소나무의 1년이다. 소나무는 태어나 2년이 지나고 3년째가 되어야 잎을 떨군다. 한 가지에 삼대(三代)가 푸른 잎으로 공존하니 우리 눈에는 늘 푸른 잎이 무성하게 보인다.

 

자고 나면 새로운 정보와 기계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사회에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 소통이 쉽게 단절되고, 두 세대 정도 지나버린 것은 박물관에 소장될 만한 골동품 취급을 당한다.

한나무에 삼대(三代)의 잎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구조야말로 소나무가 풍성한 푸름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사람들에게는 세대 간 교감과 공존 모색이 비책이 아닐까.

 

삼대가 함께 사는 소나무는 후손, 즉 열매를 만드는 과정이 엄격하다. 소나무의 열매는 솔방울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소나무는 암술머리에 꽃가루가 수정되고 1년 6개월의 긴 수태기간을 거친다. 이 기간 안에 소나무는 겨울의 혹한을 거치고 발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는다.

 

솔방울도 소나무 잎과 마찬가지로 여러 세대가 공존하는 대가족 체계를 지닌다. 일년 중 최고의 계절이라는 5월에 소나무도 결혼을 한다. 바람 부는 날, 노란 소나무 꽃가루가 일시에 떼를 지어 날아가는 집단 구혼 장면을 목격할 수 있는데 이 꽃가루가 송화가루다. 바람을 이용하므로 예쁜 모양으로 곤충을 부를 필요가 없는 소나무는 꽃은 수수하지만 엄청난 양을 만들어 낸다. 소나무의 학명은 Pinus densiflora다. 'densi-'는 ‘자잘한’이라는 뜻이고, ‘-flora’는 ‘꽃’이라는 의미인 바 꽃이 자잘하고 많은 식물이라는 뜻의 학명이다.

꽃의 숫자가 많고, 바람을 타고 퍼지고, 척박한 땅에서도 자란다는 점이야말로 소나무가 오랜 기간 지구상에서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된다.

 

소나무는 우수한 유전자를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해 놓았다. 소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함께 한 나무에 핀다. 같은 집안끼리의 결혼을 막을 장치를 가지고 있다. 암꽃은 위쪽에 그 아래에는 주머니 모양의 수꽃이 노랗게 달려 있다. 서로 위치가 반대라면 수꽃의 꽃가루가 같은 암꽃에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 정교한 장치는 한 나무의 암꽃과 수꽃은 같은 시기에 성숙하지 않는다. 수꽃의 꽃가루에는 공기주머니가 달려 있어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쉽게 날아가고, 그 후 암꽃이 성숙하여 꽃이 피는 시기를 달리 한다.

봄바람 타고 날아온 꽃가루가 한 두 종류도 아닐 터인데 어떻게 소나무 처녀는 소나무 총각을 알아볼 수 있을까?

 

각 나무의 암술머리와 꽃가루는 같은 종끼리만 서로 들어맞는 특유의 구조를 갖고 있다. 퍼즐 맞추듯 맞아야 하기 때문에 공기 중에 아무리 다른 종의 꽃가루 총각들이 널려 있더라도 자기 짝을 용케 알아본다. 사람과 다른 점은 이런 특이한 구조 대신 ‘꽁깍지’라는 사랑의 감정이 작용하는가? 소나무의 중매는 원래 바람이 도맡고 있지 않는가. 바람의 역할을 대신한 사람들에 의해 ‘혼례’를 치른 소나무 이야기는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속리산의 정이품송이 노쇠해지자 후손을 공식적으로 남기려는 사람들의 노력 이야기다. 해마다 정이품송의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 퍼뜨린 씨앗이야 한두 그루 아니겠지만 사람들은 일종의 족보를 원하였다. 서원리에 있는 소나무에게 정이품의 꽃가루를 채취하여 가루받이를 시켰는데 자손을 얻는데 실패했다. 산림청장의 주례로 삼척에 있는 5백살 연하의 금강송 나무와 혼례식을 진행하여 자손을 보는데 성공하였다. 정이품송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소나무 중 한 그루는 남산공원에 옮겨 심었다. 우리나라의 각별한 소나무사랑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소나무에는 암꽃과 수꽃이 함께 있다. 정이품송은 나이가 많으니 꽃가루를 만들지라도 암꽃이 솔방울을 제대로 맺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여성이 완경을 맞이하여 생식능력이 없어지는 시기에도 남성의 생식 능력은 더 오래 유지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장녀생리현상이 아닐까.

가루받이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열매와 씨앗을 만드는 데는 에너지와 양분이 필요할 터이니 6백년 넘은 정이품송에게서 후손을 기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터...

한평생이라 해봐야 고작 백년도 못하는 인간들이 하는 일을 보며 수백 년간 한곳을 지키며 서있는 나무는 할 말이 없을 듯싶다.


매끈한 가지 끝마다 울긋불긋 화려한 꽃이 피어 여름 내내 피고도 지치지 않고 가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꽃을 가득 피고 있는 배롱나무 이야기로 끝을 맺어 보자.

 

배롱나무는 여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꽃나무다. 꽃은 한번 피면 열흘 정도 후에 떨어지지만 뜨거운 여름 내내 끊임없이 새로운 꽃망울을 티운다. 초여름인 7월부터 늦여름인 9월까지 100일 동안 꽃을 피운다고 배롱나무의 꽃을 ‘백일홍’이라 부른다. 국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인 백일홍과 구분해서 ‘목밸일홍’, ‘백일홍나무’ 등으로도 부른다. 백일홍 나무에서 일부 발음이 탈락해 지금의 ‘배롱나무’가 됐다는 설명도 있다.

 

배롱나무 줄기와 가지가 자라는 모습은 참 멋있다. 다른 나무와 달리 배롱나무 나무줄기는 껍질이 얇아 매끈한 담갈색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배롱나무를 가리켜 ‘원숭이가 미끄러지는 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부터 배롱나무는 선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 명인 성삼문은 “지난 저녁 꽃한송이 지고, 오늘 아침 꽃한송이 피어,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 너를 대하여 한잔 하리라”라는 시를 통해 배롱나무에 대한 애정과 단종에 대한 일편단심을 드러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롱나무는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다. 그 나이 800세, 1965년 천연기념물 168호로 지정됐다. 전북 남원이나 순창에서는 오래전부터 배롱나무를 가로수로 가꿔 지역의 대표 나무로 지정하기도 했다.

 

최근엔 서울에서도 배롱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기온이 지난 100년간 세계 평균기온 상승분보다 두 배나 높은 1.8도가 올랐다고 한다. 한강변 아파트 단지들엔 목백일홍, 능소화가 제철을 만났다.

 

배롱나무는 상록수가 아닌 꽃나무임에도 오랜 시간 동안  꽃을 달고 있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5월이 되어서도 죽은 나무인가 싶을 정도로 두무지 꿈쩍하지 않다가 봄꽃들이 씨앗을 맺고 여름 신록이 짙어져 녹음세상으로 덮힐 무렵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이 꽃은 가을이 올 무렵까지 꽃을 피운다. 100일이면 석 달 열흘, 흔치 않은 꽃보기다.

 

1년 중 4분의 1 이상 꽃을 달고 있으니 상록의 소나무에 버금가는 비결을 지닌 나무다. 대부분의 꽃은 줄기나 가지 끝에 달린 꽃봉오리가 먼저 피기 시작하여 오래봉오리까지 이어지는 유한화서(有限花序)라 부른다. 더 풀이해 보면 ‘한계(끝)가 있는 꽃의 순서’라는 의미로 가장 아래쪽의 꽃이 핀 뒤 지고 나면 끝이 난다. 배롱나무는 아래쪽부터 꽃이 피어나 가지 끝으로 계속해서 꽃봉오리를 만든다. 아래쪽 꽃이 진 뒤에도 위쪽의 꽃은 계속해서 피어난다. 배롱나무처럼 위쪽의 새 가지에서 봉오리가 새롭게 생겨나면서 피어나는 개화순서를 무한화서(無限花序)라 부른다.

 

‘백일 아름다운 꽃’ 가을의 서늘함이 찾아올 때까지 배롱나무는 꽃을 피워온다. 꽃은 졌으나 꽃은 핀다. 한송이로서는 생을 다했으나 나무의 꽃은 100일을 간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백일 아름다운 꽃이 있다. 배롱나무는 무한화서를 사람은 무한능력을 가졌다. 늘 푸른 소나무, 석 달 열흘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배롱나무, 그들은 정체되어 있지 않다. 우리 내면으로부터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 되어있지 않으면 성취하지 못한다. 소나무잎은 3년을 배롱나무의 꽃은 3백일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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